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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enj 2011. 6. 3. 03:23


그의 눈은 하늘같이 맑습니다. 때로는 흐리기도 하고, 안개가 어리기도 합니다. 그는 싱싱하면서도 애련합니다. 명랑하면서도 어딘가 애수를 깃들이고 있습니다. 원숙하면서도 앳된 데를 지니고, 지성과 함께 한편 어수룩 할때가 있습니다. 걸음걸이는 가벼우나 빨리 걷는 편은 아닙니다. 성급하면서도 기다릴줄 알고,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수줍어할 때가 있고, 양보를 안하다가도 밑질줄을 압니다. 그는 아름다우나, 그 아름다움은 사람은 매혹하게 하지 않는 푸른 나무와도 같습니다. 옷은 늘 단정히 입고 외투를 어깨에 걸치는 버릇이 있습니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나 가난을 무서워 하지 않습니다. 그는 파이어플레이스에 통장작을 못 필 경우에는 질화로에 숯불을 피워놉니다. 차를 끓일줄 알며, 향취를 감별할 줄 알며, 찻잔을 윤이나게 닦을 줄 알며, 이 빠진 접시를 버릴 줄 압니다. 그는 한 사람하고 인사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 없습니다. 그는 지위, 재산, 명성같은 조건에 현혹되어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는 예의적인 인사를 하기도 하지만 마음에 없는 말은 안합니다. 아첨이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는 남이 감당하지 못할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치하는 일은 있어도 낭비는 절대로 하지 안합니다. 돈의 가치를 명심하면서도 인색하지는 않습니다. 돈에 인색하지 않고 시간에 인색합니다. 그는 회합이나 남의 초래에 가는 일이 드뭅니다. 그에게는 한가한 시간이 많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오래오래 산책을 합니다. 그는 사랑이 가장 귀한 것이나 인생의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마음의 허공을 그대로 둘지 언정 아무것으로나 채우지는 않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사랑하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받아서는 안 될 남의 호의를 정중하고 부드럽게 거절할 줄 압니다. 그는 과거의 인연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애의 일부인 까닭입니다. 그는 예전 애인을 웃는 낯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몇몇 사람을 끔찍이 아낍니다. 그러나 아무도 섬기지는 않습니다. 그는 남의 잘못을 아량있게 이해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정직합니다. 정직은 인간에게 가장 큰 매력입니다. 그는 자기의 힘이 닿지 않는 광막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눈물이 있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고갈하지 않는 윤기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유머가 있고 재치있게 말을 받아 넘기기도 하고 남의 약점을 찌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는 매우 드뭅니다. 그는 한 시간 내내 말 한 마디 안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라도 그는 같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기쁨을 갖게 합니다.




피천득/ 구원의 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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