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글이었다 진전 없는 반복, 한 사람의 생을 읽어내느라 소모된 시간들, 나는 비로소 문장 속을 스며서, 이 골목 저골목을 흡흡, 냄새 맡고 때론 휘젓고 다니며, 만져보고 안아보았다. 지루했지만 살을 핥는 문장들, 군데군데 마지막이라 믿었던 시작들, 전부가 중간 없는 시작과 마지막의 고리 같았다. 길을 잃을 때 까지 돌아다니도록 배려된 시간이, 너무 많았다. 자라나는 욕망을 죄는 압박붕대가 너무, 헐거웠다. 그러나 이상하다. 너를 버리고 돌아와 나는 쓰고 있다. 손이 쉽고 머리가 맑다. 첫 페이지를 열 때 예감했던 두꺼운 책에 대한 무거움들, 딱딱한 뒷표지를 덮고 나니 증발되고 있다. 숙면에서 깬 듯 육체가 개운하다. 이상하다. 내가 가벼울 수 있을까. 무겁고 질긴 문장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버리고 돌아오다, 김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