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 사이에
끄덕없는 깊이가 있다.
우리는 서로 그 깊이를 모른 체 하고 있다.
깊이를 걸친 흔들거리는 다리가 하나 있긴 하다.
다리가 무너지면
박살나는 깊이라는 걸 알고 있다.
혼자 조심조심 건넌다 해도
깊을수록 출렁거릴 위험인 걸 알고 있다.
간혹, 우리는 건너보자고 말한다.
떠나지 않아도 저절로 떠나있는 거리를
건널 수 있다고 말한다.
매일밤 우리는 다리 양끝에서 서성거린다.
서로가 깜깜한 깊이를 내려다본다.
시퍼런 풀밭이 깊은 바닥에서 흔들리고 있다.
<가슴부터 으깨어지겠지.>
<괜찮아, 괜찮아>
간혹 우리는 죽음도 괜찮다고 말한다.
깊은 밤, 다리까지 잠든 깊은 밤
턱없이 다리를 흔들어본다.
우리에게 시달린 다리가
막 끊어지려고 하는 걸 우리는 알아냈다.
다리 앞에서, 최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