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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enj 2013. 9. 12. 01:55

 

 

 

그와 나 사이에

끄덕없는 깊이가 있다.

우리는 서로 그 깊이를 모른 체 하고 있다.

깊이를 걸친 흔들거리는 다리가 하나 있긴 하다.

다리가 무너지면

박살나는 깊이라는 걸 알고 있다.

혼자 조심조심 건넌다 해도

깊을수록 출렁거릴 위험인 걸 알고 있다.

간혹, 우리는 건너보자고 말한다.

떠나지 않아도 저절로 떠나있는 거리를

건널 수 있다고 말한다.

매일밤 우리는 다리 양끝에서 서성거린다.

서로가 깜깜한 깊이를 내려다본다.

시퍼런 풀밭이 깊은 바닥에서 흔들리고 있다.

<가슴부터 으깨어지겠지.>

<괜찮아, 괜찮아>

간혹 우리는 죽음도 괜찮다고 말한다.

깊은 밤, 다리까지 잠든 깊은 밤

턱없이 다리를 흔들어본다.

우리에게 시달린 다리가

막 끊어지려고 하는 걸 우리는 알아냈다.

 

 

 

 

다리 앞에서, 최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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