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치마를 마당에 벗어놓고 사라진 날
나는 처음으로 치마를 입고
이상한 나라의 미소를 알아본다
처음으로 엄마가 남의 집 대문을
몰래 따고 있을 때
그 집엔 당신 말고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아요
나는 엄마를 백일째 기다리다가
싱크대 밑으로 들어가
녹아버린 눈 같아요
엄마가 눈 위에 오줌을 눈다
얘야 날 왜 지붕위로 데려왔니?
여긴 엄마의 흰 머리캉이
하늘로 다 날아날 때까지 바람이 부니까요
눈이 내리면 나는 노트`위에 물을 그려요
누구의 일부라도 될 수 있는 물을
그런 말 마라 네 몸엔 분명
내 몸의 일부만 흐르고 있다
오랜만에 한 베개에 나란히 누우니 좋다
그런데 얘야 네 흰 머리칼 냄새 때문에
도무지 잠을 못 자겠구나
슬픔이 조금 모자라도 길게 이어진다
당신의 치마 속으로 들어간
수십만 그루의 촛불들이 술렁인다
흰 구름의 일부처럼 당신은 인파 속에 잠들어 있다
대문을 열어두고
나는 당신을 찾으러 간다
당신이 더 이상 나를 못 알아보는 날부터
아무도 모른다
당신이 알아보는 나는
아무도 모른다
/김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