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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지냈나요? 나는 아직도 봄이면서 무럭무럭 늙고 있습니다 그래요. 근래 '잘 늙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합니다 달이 '지는' 것. 꽃이 '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이기는 편이 아니라 지는 편일까요 잘 늙는다는 것은 잘 지는 것이겠지요 세계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읊조립니다 당신이 보낸 편지 속에 가득한 혁명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 당신에게 답장을 합니다 모쪼록 건강하세요 나도 당신처럼 시를 섬기며 살겠습니다 그러니 걱정마세요 부끄럽지 않게 봄을 보낼겁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다음 계절을 기다리겠습니다

x 201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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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언어는 더 이상 빛이 아니다. 언어는 단순한 조명에 불과하다. 언어는 빛 아래를 파고들어가지만, 어디로 향해야 할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빛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소리만이 있으며, 말들은 서로 충돌하기만 한다. 소리가 빛을 대신한다. 파괴된 말, 말들이 만드는 소리는 그을음처럼, 빛 없이 불안하게 펄럭거린다. 축축하게 젖은 지푸라기가 타듯이, 하나의 소리에서 다른 소리로 옮겨붙는다. 불꽃도 없이 연기를 피운디.

z 2015.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