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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녁 무렵 때론 전생의 사랑이 묽게 떠오르고 지금의 내게 수련꽃 주소를 옮겨 놓은 누군가가 자꾸 울먹이고 내가 들어갈 때 나가는 당신 뒷모습이 보이고 여름 내내 소식 없던 당신, 창 없는 내 방에서 날마다 기다렸다 하고 2 위 페이지만 오려 내려 했는데 아래 페이지까지 함께 베이고 나뭇잎과 뱀그물, 뱀그물과 거미줄, 거미줄과 눈동자, 혹은 구름과 모래들, 서로 무늬를 빚지거나 기대듯 지독한 배신밖에는 때로 사랑 지킬 방법이 없고 3 그러므로 당신을 버린 나와 나를 버린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청순하고 가련하고 늘 죽어 있는 세상을 흔드는 인기척에 놀라 저만치 달아나는 백일홍의 저녁과 아주 많이 다시 태어나도 죽은 척 내게로 와 겹치는 당신의 무릎이 또한 그러하고

z 201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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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은 그렇게 힘든 작업은 아니다, 내 생각엔 -감히 말하건데- 얼굴을 바로 떼어 놓고 바라보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즉 얼굴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것들을 치워 버리고, 얼굴과 그 나머지 것들이 서로 뒤섞여 얼굴 이외의 점점 더 모호한 의미로 한없이 달아나 버리려는 것을 시선(주의력)으로 제어할 수 있다면, 혹은 하나의 얼굴을 세상과 단절시켜 바라 볼 수 있는 고독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때 이 얼굴 위로 -혹은 이 사람, 이 존재 또는 이 형상으로- 모여들어 중첩되는 것이 얼굴의 유일한 의미이다. 얼굴에 대한 미학적 인식을 가지려면 역사적 인식을 거부해야 하는 것이다. -각각의 대상은 무한한 자기의 공간을 창출한다. -사람은 그 추함이나 악의를 넘어 사랑받을 수 있다는 이 사실은..

z 2018.01.28